〈燕巖憶先兄〉(연암에서 돌아가신 형을 추억함)




我兄顔髮曾誰似 : 우리 형 외모가 그 누구를 닮았더라

每憶先君看我兄 :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오를 때마다 우리 형                   을 봤었지

今日思兄何處見 : 오늘 형님 생각이 나는데 어디를 가보나

自將巾袂映溪行 : 시냇물에 가 나를 비춰볼 밖에.



 

 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는 예전에 KBS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걸렸네》를 볼 때마다 훌쩍이셨습니다. 무심코 드라마를 함께 보고 있자면, 시나브로 아버지의 ‘킁’ 코 푸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10대 후반의 아들은 ‘그러려니’도 아니고, ‘왜 이러셔’도 아니고 그저 심드렁할 뿐이었지요.

 나중에 친구 부부랑 우리 부부랑 《왕의 남자》를 보러 갔다가, 공길과 장생이 줄에서 날며 끝나는 장면에서 펑펑 울고, 친구 부부나 제 아내나 다른 관객들이 뜨악하게 절 보던 때에나 아버지의 대추 훌쩍임이 변명처럼 따랐을 뿐입니다. 잘 포장해야 감수성이 풍부한 것이고, 그저 눈물이 많은 유전적 요인이 있다는 운운...

 그런데, 한번도 아버지가 왜 그런 잔잔한 농촌 드라마를 보면서 울적을 넘어 눈물이 나셨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제 나이 마흔, 아버지 돌아가신 지 반 년이 되어 가는 오늘에야 문득 갑자기 ‘아버지는 왜 우셨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어 생각이란 것을 드디어 했습니다.

 다섯 살에 아버지는 당신의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라곤 아마 결핵이셔서 그랬을, 피를 토하는 어머니를 무서워하는 동생을 어르는 모습 하나뿐이라셨지요. 그 나이부터 계모 슬하에서 일한 만큼 얻어먹고, 학교도 초등부터 당신 힘으로 다니다 말다 하셨으니 졸업장이 하나도 없다 하셨습니다.

 그랬군요. 이렇게 한번만 생각해도 알겠습니다. 《대추나무 사랑걸렸네》에는 가족이 있습니다. 대가족이 있지요. 당연히 늙은 어머니도 따사로이 계십니다. 드라마의 서사가, 갈등이 슬픈 것이 아니라 충족될 수 없는 결핍과, 그래서 간절한 그리움에 푹 잠겨 계셨군요.

 어떻게 이 간단한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요. 그리운 혈육을 볼 수 없다는 것, 박지원의 이 시는 그 아득하고 먹먹한 슬픔과 외로움과 그리움을 절절하게 그려내었습니다. 이제 나밖에 없다. 그리운 이들은 간 데 없고.

 박지원은 그 시냇물에 정지상이 그랬던 것처럼 눈물을 더했을까요.

Posted by dalg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