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받으셨단다. 홍보수석에 이어 전 문화부 차관까지. 한번에 뇌물 조로 받은 것이 아니라 매달 천 수백만원씩 몇 년간 총 십수 억원을. 그렇구나. 관직에 나가 권력자와 거리가 가까워 잘 나가면 스폰서를 받는 거구나. 연예인 스폰서는 부귀한 자가 연예인을 밀어주고 많은 돈을 주는 대신 성을 사는 것이라는데, 관료들은 뭘 주는 걸까? 늘 그랬듯 대가성 없다며 집행유예를 내려주시겠지.
어쩌다 요즘은 다들 입신은 않고 양명만 하려들까. 세상에 나간다는 것이 제 잇속을 차리는 것만 가리키게 되었을까. 한 정권 전까지만 해도 도덕성 운운하며 큰 흠결이던 위장전입이나 투기 같은 것이 이제는 고위관료의 자격증처럼 보인다.
일제강점기에 종교, 문화 등 모든 분야의 어른과 기린아들이 다 친일로 몰려 갈 때, 잡것 서울 생활 때려치고 낙향하여 비록 외로웠으나 지조를 지킨 신석정의 시가 떠오른다.
…
국화 향기 흔들리는
좁은 서실(書室)을
무료히 거닐다
앉았다, 누웠다
잠들다 깨어 보면
그저 그런 날을
눈에 들어오는
병풍의 ‘낙지론(樂志論)’을 읽어도 보고 ……
그렇다!
아무리 쪼들리고
웅숭그릴지언정
― <어찌 제왕의 문에 듦을 부러워하랴>
…
〈대바람소리〉, 《대바람소리》(1970, 창작과비평사)
낙지만 질겅질겅 씹어먹지 말고 낙지론 한번 읽어보란 말이다. '제왕의 문'을 헌신짝처럼 아는 어른이 왜 이렇게 드무냐. 쪼들리는 것 버리는 것만이 지상 목표인 자들의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21세기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는 분들이 민주주의보다 자유민주주의에 목을 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지상낙원을 만드시려고.
그래서
한탄스러워서
한때 해서는 안 될 말이었으나, 이제는
조선일보에도 실리는 시의 마지막 구절을 읊조려 본다.
…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1970, 창작과비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