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폰서 공화국

덜그덕 2011. 9. 23. 17:21

또 받으셨단다. 홍보수석에 이어 전 문화부 차관까지. 한번에 뇌물 조로 받은 것이 아니라 매달 천 수백만원씩 몇 년간 총 십수 억원을. 그렇구나. 관직에 나가 권력자와 거리가 가까워 잘 나가면 스폰서를 받는 거구나. 연예인 스폰서는 부귀한 자가 연예인을 밀어주고 많은 돈을 주는 대신 성을 사는 것이라는데, 관료들은 뭘 주는 걸까? 늘 그랬듯 대가성 없다며 집행유예를 내려주시겠지.


어쩌다 요즘은 다들 입신은 않고 양명만 하려들까. 세상에 나간다는 것이 제 잇속을 차리는 것만 가리키게 되었을까. 한 정권 전까지만 해도 도덕성 운운하며 큰 흠결이던 위장전입이나 투기 같은 것이 이제는 고위관료의 자격증처럼 보인다.


일제강점기에 종교, 문화 등 모든 분야의 어른과 기린아들이 다 친일로 몰려 갈 때, 잡것 서울 생활 때려치고 낙향하여 비록 외로웠으나 지조를 지킨 신석정의 시가 떠오른다.


국화 향기 흔들리는

좁은 서실(書室)을 

무료히 거닐다

앉았다, 누웠다

잠들다 깨어 보면

그저 그런 날을


눈에 들어오는

병풍의 ‘낙지론(樂志論)’을 읽어도 보고 ……


그렇다!

아무리 쪼들리고

웅숭그릴지언정

― <어찌 제왕의 문에 듦을 부러워하랴>


〈대바람소리〉, 《대바람소리》(1970, 창작과비평사)


낙지만 질겅질겅 씹어먹지 말고 낙지론 한번 읽어보란 말이다. '제왕의 문'을 헌신짝처럼 아는 어른이 왜 이렇게 드무냐. 쪼들리는 것 버리는 것만이 지상 목표인 자들의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21세기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는 분들이 민주주의보다 자유민주주의에 목을 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지상낙원을 만드시려고.


그래서

한탄스러워서

한때 해서는 안 될 말이었으나, 이제는

조선일보에도 실리는 시의 마지막 구절을 읊조려 본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1970, 창작과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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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g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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