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7일, 담양군 무정면 오룡리 산38,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92호

어머니랑 어머니 아시는 수녀님 두 분과 함께 조촐한 여행을 했다. 한 분이 발령(?)을 받으셔서 진주로 임지를 옮기게 되어 가게 된 이별여행이랄까. 어머니랑 담양에 있는 돌부처 몇 분 뵈려고 기획한 것이었는데, 수녀님들과 함께 하기로 한 약속을 어머니가 잊으신 탓에 한 수녀님을 다른 수녀님에게 모셔다 드리기로 한 것이 모두 함께 움직이게 되었다. 덕분에 그 전날 펑펑 울며 본 "울지마 톤즈"의 주인공이신 이태석 신부의 묘소에 참배하는 복을 누렸다. 마침 담양에 살레시오 수도회 묘역이 들어 있는 천주교 묘지가 있었던 것이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에 껄껄 웃으시며 맥주 한 잔 주셨던 김용배 안드레아 신부의 묘도 한켠에 있어 인사 드렸다. 수십년 간 묘지를 참배하시며 깨달은 바 생화보다는 조화가 낫다고 한 수녀님이 그러셔서 오는 길에 망월동 구 묘역 어귀에서 산 조화도 놓아 드렸다. 생화는 일찍 시들어 두고두고 쓸쓸함을 웅변하지만, 조화는 다음에 올 때까지 퇴색하지 않아서 일 년에 한 번쯤 들러 상쾌하게 새 조화로 바꾸신다고 한다. 아마 쉽게 여행하지 못하는 수녀라는 자리가 찾은 지혜이겠지. 여하튼 그렇게도 아름다운 사람들을 빨리 거두어 가는 이 조화를 어찌 이해해야 할지 몰라 먹먹하였다. 

이 돌부처 역시 네비가 알려 준 곳에서는 찾을 길이 막막했다. 그저 찻길에서 멈춰 세웠기 때문이다. 오룡주유소가 근처에 있어서 주차하고 내리는데 지나가는 노인이 또 다행히도 계셨다. 그 분이 가리킨 곳에서야 부처를 볼 수 있었다. 오룡주유소를 뒤로 찻길을 앞에 두고 서서 열시와 열한시 사이쯤 되는 방향에 있다. 찻길 둘을 건너야 한다. 

집에서 찾아 본 사진에는 주변이 그렇게 옹색하지 않고, 문화재 알림판도 있던데, 지금은 바로 옆에 양계장이 들어서 있어서 곁방살이 하는 듯 누추하다. 알림판은 기둥만 남아 녹슬고 있고.

불행히도 보수가 너무 과했다. 이마랑 눈두덩에 시멘트를 발라 그 사람 맘대로 감은 눈을 만들었는데, 꼭 햇살이 눈부셔서 실눈 뜨고 있는 것 같다. 웃는 듯 마는 듯. 그래도 두툼한 아랫입술과 슬며시 웃는 입매가 아름답다.  


과한 보수의 절정은 손금까지 그려 넣은 왼손 되시겠다. 아까 노인이 말씀해 주신 바 지금 시멘트로 만든 손바닥이 있던 자리에는 '구멍'이 있었다. 그리고, 육이오 당시 총상을 입어 총알 자국이 있었다고 한다. 아마 그것을 시멘트로 바른 모양이다. 굳이 손을 만들어 넣은 정성이야 뭐라 할 수 없지만, 나름 문화재인데 원형을 남겨 두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크다. 이것도 다 이 부처의 운명이려나. 코는 많은 돌부처가 그렇게 수난을 당하듯 아들 낳으려는 기대로 갈아 가서 뭉뚝하게 되었다. 그래서 친숙하고 푸근한 인상이다.

노인 말로는 근처에 돌부처가 한 분 더 있는데, 두 분은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이 오룡리 석불이 더 커서 남불, 그 부처를 여불이라고 한단다. 길도 자세히 알려주려 하셨지만, 일행이 있었기에 인연은 여기까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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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g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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