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적(李彦迪), 〈次曹容叟韻〉(조용수의 운을 빌려)



이언적 수고본 일괄-《대학장구보유》

출처 : 문화재청




靑山晩雨餘 : 안개 걷힌 청산에 늦은 비 내리는데

逍遙俯仰弄鳶魚 : 굽어보고 올려보며 솔개와 물고기를 즐기도다 
莫言林下孤淸興 : 숲 속 선비의 맑은 흥을 외로운 것이라 하지 말게
幽鳥閒雲約共棲 : 그윽한 새와 한가로이 떠도는 구름이 함께 살자 약속했느니.



 첫 구 해석이 영 시답잖은데요. 송재소 선생의 “비온 뒤 안개 걷혀 산빛은 푸르른데” 하는 해석이 참 근사해서입니다. 그렇지만, 아직 배우고 있는 자답게 7언의 기본 해석인, 앞 넉 자 해석한 뒤에 뒷 석 자 따로 했습니다. 만우(晩雨)가 저녁 무렵에 오는 것인지 어느 계절의 뒷 시기에 오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 구의 주어가 산보다는 만우로 보이기도 했구요.

 둘째 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경》 〈대아〉편의 〈한록〉(旱鹿)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군요. 


鳶飛戾天 : 솔개는 날아 하늘에 이르고

魚躍于淵 : 물고기는 연못에서 뛴다

豈弟君子 : 즐거워하시는 군자님께서

遐不作人 : 어찌 사람들을 진작시키지 않으시겠는가


 이렇듯, 《시경》에서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는 것은 그저 자연의 한 모습을 포착한 표현일 뿐인데요. 이 구절이 《중용》에서 인용되고 주희의 해석을 거치면서 자연의 이치를 상징하는 구호가 되었답니다. 솔개가 연못에서 날지 않고, 물고기가 하늘에서 뛰지 않는 것이 당연하므로, 연비어약(鳶飛魚躍)이 천리(天理)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언적이 둘째 구에서 俯仰弄鳶魚(솔개를 우러러보고, 물고기를 굽어보며 즐기다) 하는 것은 단순히 자연을 감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이법을 즐기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고 합니다.

 저는 이 시에서 “임하청흥을 외롭다고 말하지 말라, 유조한운이 함께 살자고 약속했느니”하는 삼사구가 참 좋습니다. 자연[林下] 속에서 사는 것은 외롭지요. 자연 속에서 인간이 모여 살면 그곳은 마을이지 자연이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이언적은 외롭지 않다고 합니다. 새와 구름이 함께이니까요. 그 마음이 여유롭고, 진정 자연을 사랑하며, 다정한 모습까지 느껴집니다. 이황의 선배로 근엄한 도학자라기보다 인간사에 연연해 하지 않는 도인의 풍격마저 느껴지는, 아름다운 구절입니다. 그래서 2구의 연어(鳶魚)도 비록 관용어를 관념적으로 사용한 것이긴 해도, 천리까지 가지 않고, 그저 자연의 한 모습으로 보입니다. 시가에서 그 흔한 백구(白鷗)처럼요.  




Posted by dalg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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