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희

덜그덕 2004. 10. 27. 13:59
엄마의 발, 성녀와 마녀 사이
2000년 11월 16일
딸아, 보아라,
엄마의 발은 크지,
대지의 입구처럼
지붕 아래 대들보처럼
엄마의 발은 크지,

엄마의 발은 크지만
사랑의 노동처럼 크고 넓지만
딸아, 보았니,
엄마의 발은 안쪽으로 안쪽으로
근육이 밀려
꼽추의 혹처럼
문둥이의 콧잔등처럼
밉게 비틀려 뭉그러진 전족의
기형의 발

신발 속에선 다섯 발가락
아니 열 개의 발가락들이
도화선처럼 불꽃을 튕기며
아파아파 울고
부엉부엉 후진국처럼 짓밟히어
평생을 몸살로 시름시름 앓고

엄마의 신발 속엔
우주에서 길을 잃은
하얀 야생별들의 무덤과
야생조들의 신비한 날개들이
감옥창살처럼 종신수로 갇히어
창백하게 메마른 쇠스랑꽃 몇 포기를
조화(弔花)처럼
우두커니 걸어놓고 있으니

딸아, 보아라,
가고 싶었던 길들과
가보지 못했던 길들과
잊을 수 없는 길들이
오늘밤 꿈에도 분명 살아 있어
인두로 다리미로 오늘밤에도 정녕
떠도는 길들을 꿈속에서 꾹꾹 다림질해 주어야 하느니
네 키가 점점 커지면서
그림자도 점점 커지는 것처럼
그것은 점점 커지는 슬픔의 입구,

세상의 딸들은
하늘을 박차는
날개를 가졌으나
세상의 여자들은 아무도 날지 못하는구나,
세상의 어머니는 모두 착하신데
세상의 여자들은 아무도
행복하지 않구나.....
- 김승희,'엄마의 발'. 시집 '달걀속의生'에서.



현모양처
낮에는 요조숙녀, 밤에는 요부.
가없는 모정
가없는 순정.

참 지독한 편향입니다.
지독한 강요와 굴레입니다.
알게모르게
-이것이 바로 교육으로 둔갑한 지배입니다만
우리는 세뇌당하고 있지요.
세뇌는 아니더라도
마치 고향을 그리는 마음처럼
나도모르게
-역시 문학 등 여러 문화로 둔갑한 지배입니다만
그따위 것들을 품고 있지는 않은지요.

비뚤어진 마음으로 환한 웃음을 지을 수 없듯이
비뚤어진 관계 속에서 행복은 없는 것입니다.

딸로, 어머니로서 뿐만 아니라
여자로서도 '날' 수 있도록, '행복할' 수 있도록.
나아가 차이는 분명히 알되 차별은 깡그리 없는
너도 나도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이 가득찬 세상이 오기를.

어디에 빌죠?
默言而行뿐입니다.
들판의 겨자씨라죠.


같은 시집의 '성녀와 마녀 사이'입니다.


엄마, 엄마,
그대는 성모가 되어 주세요,
한국전래동화 속의 착한 엄마들처럼
참, 아니, 사임당 신씨
신사임당 엄마처럼 완벽한 여인이 되어
나에게 한평생 변함 없는 모성의 모유를
주셔야 해요,
이 험한 세상
엄마마저, 엄마마저..... 난 어떻게.....

여보, 여보,
당신은 성녀가 되어 주오,
간호부처럼 약을 주고 매춘부처럼
꽃을 주고 튼튼실실한 가정부도 되어
나에게 변함없이 행복한 안방을
보여주어야 하오,
이 험한 세상
당신마저, 당신마저..... 난 어떻게.....

여자는 액자가 되어간다,
액자 속의 정물화처럼
고요하고 평화롭게,
액자 속의 가훈(家訓)처럼
평화롭고 의젓하게,
여자는 조용히 넋을 팔아 넘기고
남자들의 꿈으로 미화되어
도배되어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액자 하나로
조용히 표구되어
안방의 벽에 희미하게 매달려 있다

모나리자의 미소는 웃는 것인가
우는 것인가,
그녀의 미소는 용서인가
배신인가.
난 알 수 없지만
난 그녀의 그림자 망사옷 같은
검은 가슴 속에서
무서운 화산의 힘을 두근두근 느낄 수 있지,
남자들의 꿈으로 미화될 수 없는
박제될 수 없는
마녀의 부엌 같은 뜨거운 화산이
그녀의 미소를
영원한 무서움으로 낯설게 만들고 있는데,

그녀는 애매하다,
성녀와 마녀 사이
엄마만으로도
아내만으로도
표구될 수 없는, 정복될 수 없는,
저 영원한 회오리의 명화는,
여인에게 사랑은 벌같은 것이지만
그러나 여인은 사랑을 통해
여신이 되도록 벌받고 있는 거라고
그녀는 스스로 영원을 표구하면서
세상을 배경으로 거느리고
늠름하게 서 있지

Posted by dalg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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