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호수

읽다 2013. 7. 21. 17:47

이미 읽은 책 중에 정말 맘에 드는 것은 집에 없는 일이 잦습니다

진짜 좋다고 여기저기 건네주기 쉽기 때문.


저에겐

황대권의 <야생초 편지>, 레이먼드 카버나 이윤기 윤영수의 소설, 황지우의 시집이 그렇고,

이시영의 시집 <바다 호수>가 유독 그렇습니다.


얼마 전에 책장을 훑어 보다가 없어서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에 담아놓았더니

아내 책 배달에 묻혀 또 찾아 와서

껄껄 웃었다, 한숨도 쉬면서 단숨에 읽었습니다. 


비슷한 시절에 나온 <은빛 호각>이나  <아르갈의 향기>에 실린 시들을 섞어 놓으면 어느 시집에 실렸는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주제나 분위기가 닮았는데요,


어린 시절부터 시인이 반독재 활동에 왕성히 참여하던 시절 등 과거에서 길러낸 기억들이 시의 주된 대상입니다.

그래서 고향 사람들, 가족들이 나오고, 주변 문인들이 등장합니다. 감방 동료들이나 심지어 공권력의 하수인들도 나오지요.

네, 그들과 얽힌 낱낱의 이야기들이 시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미 사라진 것들이 그저 존재의 유한함 때문에 오는 쓸쓸함, 빤한 그리움을 바탕으로 다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눈앞에 등장하는, 마치 한창 공연 중인 연극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드러납니다. 

그래서, 박진감이 넘치고, 모든 시들 밑에 따뜻함이 흐르고 있어서 읽고 나면 기분이 매우 상쾌해지고 훈훈해집니다. 

재밌고 따뜻한 이야기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힐링이지요.


시집에 실린 "어느 문상"입니다.



천규석 선생이 어느 겨울에 아내 상을 당했는데, C선생이 천호동 어느 병원을 물어 물어 찾아 갔답니다. 그저 빈속에 소주 몇 잔 먹었는데, 아침에 깨어보니 경상도 창녕이라네요. 화들짝 놀라 어찌 된 일인지 물었더니 상주 옆의 나이 지긋한 사람이 바로 옆 장지를 가리키며, 

선생님께서 술에 취해 하도 애통해하시길래 망자와 가까운 인척지간일 줄 알고 어젯밤에 차로 이리 모셔왔노라고 아주 정중히 말하는 것이었다.


이시영, <바다 호수>(문학동네, 2004)




바다 호수 - 2004 백석문학상 수상작품집 (제6회)

저자
이시영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04-05-20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간명한 언어와 맑은 서정성으로 삶에 대한 빛나는 통찰을 담아내온...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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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g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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