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다녀옴. - 두 번째 이야기 |
2001년 10월 14일 |
시간과 호주머니가 허락하는 한 자꾸 가고 싶은 곳이 헌책방이야. 발견의 기쁨과 저렴의 뿌듯함이 다리품과 어깨품을 이기고도 남는데 광주에는 가볼 만한 헌책방이 '담양서점'말고 없어서 서울에 갈 일이 있으면 헌책방 갈 일에 살짝 설레지. 녹두에서 나온 '여성 이야기주머니'는 콩트로 읽는 여성학 강의라는데 재미있는 꼭지가 있거든 소개하기로 하고 이번엔 정현종 시인에 대해 이야기하지. 숨책에서 발견한 '환합니다'라는 책인데 시인이 고르고 자기 글씨로 쓴 시묶음 가운데 하나야. 정현종 시인이 낸 단행본은 번역시집까지도 다 읽었는데,- 얼마 전에는 원천서점에서 '불과 얼음' 초판본을 900원에 사서는 재판한 것이랑 뭐가 달라졌나 슬쩍 번갈아보기도 했으니까.- 못 보던 것이라 조금은 당황스럽기까지 하더라구. 역시 노는 물이 다르고, 파는 밭이 다르면 제대로 알 수가 없다고, 인자 나도 문학소년을 작파하는 때가 됐지 싶기도 해. 그래서 얼른 집을까 하다가 신작시집도 아니고 선집인데 다 본 시 묶은 것을 괜히 사나 싶어 좀 망설이다, 그래도 시인이 직접 고른 시들 묶음이니 구경이나 하자고 샀지. 지난 번에 서울 갔을 때, 준형이 따라 상대 올라 갔다가 우연찮게 만수도 스쳐보고 준형이 일 끝나고 내려오면서 본관 뒤 양버즘나무 아래로 휘적휘적 동문께로 가시는 희끗희끗하고 덥수룩한데다가 무척 큰 머리의 시인을 또 뵈었지. 일학년 땐가 선생 볼려고 수업 넣었다가 개강헌 날, 시험 보는 날 그렇게 두 번 뵙고는 그렇게 거리에서 간혹 마주치는데 눈이 게슴츠레 풀어지면서 그냥 행복해진다니까. 하! 사람이 사람을 이리도 행복하게 하는구나. 설장고 치는 어느 누나의 간드러진 모습을 보거나 기똥차게 불러제끼는 노래 한 대목을 들을 때의 그 질질 쌀 것 같은 그런 기분 말고 음 술 잔뜩 먹은 다음 날 집 앞 수퍼에서 시원한 둥굴레 캔을 한 숨에 벌컥 마시는 시원함 같은. 그 분이 나를 알 리 만무하므로 더 마음 놓고 행복하지. 그 책에서 몇 적으며 이만 줄임.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그래 살아봐야지 너도 나도 공이 되어 떨어져도 튀는 공이 되어 살아봐야지 쓰러지는 법이 없는 둥근 공처럼, 탄력의 나라의 왕자처럼 가볍게 떠올라야지 곧 움직일 준비 되어 있는 꼴 둥근 공이 되어 옳지 최선의 꼴 지금의 네 모습처럼 떨어져도 튀어오르는 공 쓰러지는 법이 없는 공이 되어. 다시 술잔을 들며 - 한국, 내 사랑 나의 사슬 이 편지를 받는 날 밤에 잠깐 밖에 나오너라 나와서 밤하늘의 가장 밝은 별을 바라보아라 네가 그 별을 바라볼 때 나도 그걸 보고 있다 (그 별은 우리들의 거울이다) 네가 웃고 있구나, 나도 웃는다 너는 울고 있구나, 나도 울고 있다. 마음 놓고 놓은 줄도 모르게 마음 놓고 있으니 아 모든 마음이 생기는구나 지금은 마음 못 놓게 하는 일 마음 못 놓게 하는 자도 다 마음 놓이는구나 사랑도 무슨 미덕도 내 거라고 안 할 수 있을 때 나는 싸울 수 있으리 내 바깥에서만 피어나는 사랑도 미덕도 만나리 마음 놓고 자꾸 모든 마음이 생긴다면! 섬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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