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2001년 9월 30일

사랑에 대해 말하는 것이 어려운 것처럼
가족에 대해 말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간호사도 다녀가고 모두 서둘러 인사하고 자리 뜨자
아버지가 물었다
"뉘기신데 다들 갔는데 남아 계시지요?"
그대는 대답했다. "저는 맏아들입니다."
"나에겐 당신 같은 아들 없는데요.
여하튼 감사합니다.
말씨 귀에 익은데, 혹시 고향이 어디신지?"
"경남 거창입니다."
"아 나하고 고향이 같군요."
"제 출생지는 함경남도 길주 대택이구요."
"대택, 내가 오 년 동안 역장으로 있던 곳.
시월 중순부터 큰눈 내려 사방 막막히 막히던 곳,
눈과 하늘만 있던 곳,
(젊은 날의 큰눈이 아버지 얼굴에 적적한 홍조를 만든다)
동향인이 그 사람 드문 막막한 곳에서 태어나셨다니,
참 우연이란 무섭군요."

* 얼마 전 국문과 동료 이상택형이 치매에 걸린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간호할 때 한 이야기를 윤색해서 초잡아두었던 시이다. 며칠 전 저녁 무렵 삶 자체가 막막한 곳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그와 그 아버지 사이의 우습고도 슬픈 대화가 마음 가까이 떠올랐다.
- 황동규, '무서운 우연',『외계인』,문학과지성사, 1997.





가족을 이룬다는 것이 자식에게는 선택의 일이 아니다.
내가 한국어를 모국어로 고른 것이 아니고,
내가 울엄마를 어미로 고른 것이 아니고,
내가 누나 없기를 바란 것이 아닌 것과 같이.

황동규 말대로 '무서운 인연'일 따름이다.

그 쓸쓸함과 짠함을 기억하려고
잊지 말라고
사람들은 제사며 명절을 만들었을 것이다.
한 性만 괴롭히므로 몇 놈 빼고 싫은 일이 돼버렸지만.

가만히 눈들어 하늘보면
가을이라 추석 때는 깊은 하늘에
두툼하고 까칠한 외할머니 손이랑
할머니 못잊어 술잡숴 늘 취한 할아버지랑
명절인디 갈데 없는 정일이형이
여그는 평안허다 거그는 어떠냐고
어른거린다.


올 추석에도 고생하실 숱한 딸들에게
삼가 위로와 죄스러움을 전하면서
갈수록 '차리는놈 먹는놈 같아지는 누리'가 되기를 바라면서
그래도, 어찌되었든
추석 잘 쇠시오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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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g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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