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거리에서

덜그덕 2005. 8. 24. 16:20
물어 볼까
걸음을 멈추고 물어 볼까
길은 어디냐고 물어 볼까
갈래갈래 길은 많아도
갈길은 없고
어두워지는 거리
기다릴까
어둠에 기대여 기다릴까
햇빛 같은 얼굴을 기다릴까
우글우글 사람들은 끓어도
얼굴은 없고
비내리는 골목
가는 곳마다
길은 막히고
기다림 끝엔 죽음만이
그래도 우린 길을 간다
그래도 우린 기다린다
아직 우린 살아 있다
- 박이문, '보이지 않는 것의 그림자' 중에서

철학자이면서 시인인 박이문의 글에서 위안을 얻는다.
깊고 맑은 눈으로 50년을 살아도
모른다.
어디로 갈 것인지, 심지어 길이 어딘지조차.
공자도 60이 되어야 남들의 구시렁 소리에 아무렇지 않다고 했다.
서른 셋 사촌형의 사는 게 재미없다는 전화 너머
서른 하나 친구의 뭘 하며 사냐는 휴대폰 목소리에
나는 흔들리고 가없이 쓸쓸해지지만
아직 
우린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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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g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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