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君宗德來訪〉(김종덕 군이 찾아오다)
雨中山客至 : 비 오는 산중에 손님이 오니
野飯折秋菘 : 가을배추 걷어 들에서 밥을 차렸네
不愧貧居事 : 가난 따위 부끄럽지 않고
相留到日終 : 서로 붙들다 해가 진다네
평민사에서 펴낸, 허경진 선생이 펴낸 옥봉 백광훈 시선에서 제일 맘에 드는 시입니다. 시집에는 해설에 나온 대로 이별이 시의 주제로 많이 등장하는데요, 이 시는 이별을 부각하지 않고, 정다운 만남이 도드라져서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것이야 공자 제자 안회 이후, 속이야 어떻든 모든 선비들의 신조이니 뭐 특이할 것도 없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벗과 헤어지기 싫어서 서로 붙들다 해가 다 가는 것도 뭐 그럴 수 있겠습니다.
이 시가 재밌거나 특이한 것은 비 오는 산속에 손님이 온 상황, 그 상황에 굳이 들에서 밥을 먹는 데 있습니다. 가난하니 차려 낼 것이 김장용 배추밖에 없고, 또 가난하니 들고 온 것이 없어서 그저 '飯'을 나누는 것입니다. 네. 반주가 없습니다. 반주는커녕 비 가릴 오두막도 없습니다.
가을비는 추적추적 내리는데, 고작 배추에 있어봐야 토장에 몇 덩이의 주먹밥을 놓고, 막걸리도 없이, 어디 들어갈 데도 없이, 그렇게 처절하게 가난한데
아랑곳없습니다. 두 벗은 그저 행복합니다. 간다고 일어서면 더 있다가 하고 붙잡고, 이제 그만 가 하면 좀만 더 있다 갈게 하고 붙잡다가 해는 떨어집니다. 서산으로 떨어지며 붉어집니다. 가을도 붉고 두 벗의 눈시울도 붉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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