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인, <帶兒子醮行馬上 憶先人遺藁句語 不勝感懷>(아들놈 장가가는 길 함께 가다가 선친의 시구가 떠올라 인 감회를 이길 수 없어)


白頭行色爲兒饒 : 머리가 허옇게 세어, 아들놈 장가가는 길 함께 가는데 

終日馳驅不說勞 : 종일 말을 달려도 전혀 힘들지 않네

恰過五年先藁語 : "꼭 5년은 지나야겠구나" 하는 선친의 시어가

至今追憶血沾袍 : 지금 떠오르니 피눈물이 옷을 적시는구나


  며칠 전, 올해 고3이 되어 기숙사에 들어갔던 아들 녀석이 동갑내기 여친을 집에 데려왔습니다. 다음날이 시험인데 어디 공부할 데가 마땅치 않아 왔다지요. 온다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집을 치우면서 뭔가 묘하더군요. 저도 대학교 다닐 때, 두어 번 여친을 아버지께 보여 드렸습니다. 맛난 것을 사주셨지요. 무슨 얘기를 나누었을까 아득합니다. 아버지는 어떤 기분이셨을까. 이젠 물어볼 수만 있지 답을 들을 수 없으니 더욱 먹먹합니다.  


  이수인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찾아 보 1739년(영조 15)부터 1822년(순조 22)까지 살다 가신 유학자네요. 시의 부제가 이렇게 달려 있습니다. '先人元朝詩 有吾年五十餘 汝年今十二 恰過五六年 始可見汝娶 蓋以不肖未及成長 故憫然有是詩' (선친의 시 <설날 아침>에 '내 나이 50여 세, 네 나이는 이제 12. 꼭 5-6년은 지나야 네가 장가드는 걸 보겠구나' 했는데, 이것은 내가 아직 다 자라지 못한 것이 서글퍼 지으신 것이다. )

  아들 장가가는 길, 온종일 말 위에 있어도 피곤하지가 않은, 가족의 경사, 아비로서 뿌듯한 순간. 불현듯 떠오른 선친의 시구. 새해라 아비나 아들이나 한 살 더 먹고 늙어가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일몰의 시간은 훨씬 급한 법. 얘 장가갈 때까지 내가 버틸 수 있으려나 하는, 선친의 안쓰러움이 이수인의 가슴을 아프게 때립니다.

  눈물이 아니라 피()가 날 슬픔, 소매(袖, 袂)가 아니라 두루마기() 전체를 적시게 이수인은 웁니다. 

  아버지는 먼저 가셨고, 이제야 알게 된 그 마음을 나눌 길이 영영 없기 때문입니다. 

Posted by dalg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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