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운, 시조

덜그덕 2004. 10. 27. 15:06
이 아름다운 사람을 이제서야...
2001년 10월 24일
어제(23일)는 공군사관 지원 차 신체검사와 면접을 했어.
놀라웠어.
무릎 밑으로 팬티 내리십시오.
뒤돌아 엉뎅이 까십시오.
불알 두쪽이 다 있는지 살짝 들어보는 비닐장갑손
에 아무도 모멸감을 느끼지 않았어.
후딱 해치워야겠다는 생각 밖에는.
저녁에 들어와 본 뉴스 한 토막
일용근로자 ○○○씨는 미군 고압선에 두 팔다리를 모두 잃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움직일 수 없이 병원에 누워 있습니다.
죽어야 했는디 식구들 고생허라고 병원 삯에 치닥거리랑...
고압선에는 두터운 피브이씨 피막을 씨우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피막으로 감싼 고압선의 경우 접촉시에도 모씨가 당한 것과 같은 감전 사고는 없다 한다. 그러나, 미군 영역 내의 고압선 처리 규정은 피막 없이 나선으로만 설치하도록 되어 있다. 문제는 미군영역 바깥으로 나가는 고압선도 그들의 규정대로 처리하여 고압선 감전의 위험이 크다는 데 있다.
미군은 한국에 적응할 필요가 없다. 지들 하던대로 맘대로 해도 사람을 찢어 죽여도 찔러 죽여도 때려 죽여도 건드는 자가 없다.

똥구멍을 내비치면서 그 날 뉴스를 보면서
한없는 무력함을 '군사문화적'으로 절감했다.

그것은 그렇고
어젯밤 친구는 스물일곱 내 친구는
또, 막막한 칠흑같은 외로움을 전화로 전했다.
같이 외로웠을 때나 지금이나
해줄 것 없고 수도 없으니
안타까운 일이고 쓸쓸하다.

전화 받는 그 무렵에 나는 아름다운 사람 조운의 시조를 읽고 있었으니, 분단의 아픔으로 우리 문학사에서 사라져야 했으나, 절창이라고 교과서에 실린 현대시조를 조롱할 만한 아름다운 시조를 몇 적으면서
여러 어수선함을 잠시 접고
어찌 못하는 안타까움을 쉬게 한다.



술은 싫어해도
술자리에도 좋더니라

평생에 두려워 조심하는
동무연만

취하면 그의 무릎에 잠든 적이 많았어.
- 故友 竹窓




어젯밤 비만 해도 보리에는 무던하다
그만 갤 것이지 어이 이리 굳이 오노
봄비는 찰지다는데 질어 어이 왔는고.

비맞은 나무가지 새엄이 뾰족뾰족
잔디 속잎이 파릇파릇 윤이 난다
자네도 비를 맞아서 정이 치나 자랐네.
- 비 맞고 찾아온 벗에게




서울이 예서 팔백리 머나먼 길이엇만
오자면 하로ㅅ길 길이먼게 아니드고
무심이 천리요만리 모르는체 지내데

너는 나사는곧 칠십리밖을 지냇드구나
구타여 날보자고 들려가든 못하야도
지낸다 엽서나 날리지 내가가서 볼것을

나와 나사는곧 총총하야 잊었든가
예기 무심할손 차마그럴 노릇인가
이사람! 너나되어 그려봐라 너도짐작 있을라
- 예! 이사람





배운 걸 모른다고
툭 질러 나무랬다

눈물 섞인 소리
다시 고쳐 읽는 모양

엊그제 나 하던 양 같아 선웃음을 삼키다.
- 복습시키다가




소리를 벽력 같이
냅다 한번 질러볼까

땅이 꺼지거라 퍼버리고
울어볼까

무어나 부드득 한번
쥐어보면 풀릴까.
- ×월 ×일




꽃철에 비바람 치면
봄이 반이나 무지러져

피자 지는 꽃과
다 못피고 지는 꽃들

나 역시 스무살 적부터 낯에 주름 잡혔어.
- ×월 ×일





투박한 나의 얼굴
두툼한 나의 입술

알알이 붉은 뜻을
내가 어이 이르리까

보소라 임아 보소라
빠개 젖힌
이 가슴.
- 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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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alg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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